막장 드라마나 영화, 해외 예능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단골주제는 뭐가 있을까요? 역시 ‘출생의 비밀’이나 ‘친자
확인’ 만한 것이 없겠죠. 이 친자를 확인하는 방법
중에 우리한테 가장 쉽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방법은 아마 혈액형으로 구별하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부모가 AB형과 O형인데
자식이 O형이 나오면서 비극이 시작된다”는 식의 드라마 어디선가
본 적 있으실 거에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혈액형을 이용해서 친자여부를 판단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가족의 혈액형이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유전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외도를 의심하거나 친자식이 아닐 것이라고 함부로 확신하면
안되는 3가지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Cis-AB형입니다.
이 혈액형은 전체 AB형 중 0.13%밖에 없는 아주 희귀한 혈액형인데요. 2011년에 ‘친모 영아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AB형 남성과 O형 여성이 만나
자식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O형인 경우였습니다. 일반적으로 AB형과 O형이
아이를 낳으면 A형이나 B형이 나오고, O형은 나올 수가 없죠.
하지만 우리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 나와버렸고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한 남편은 매일같이 아내를 폭행하고 추궁했다고
해요. 그리고 결국 참다못한 아내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도 끊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남편의 혈액형이 일반적인 AB형이 아닌 Cis-AB형이었고,
안타깝게도 자식의 혈액형은 O형이 나오는 것이 가능했던 거죠.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면, 원래 일반적인 AB형은 부모님으로부터 각각 A유전자와 B유전자를 하나씩 받아 그 혈액형이 표현됩니다. 그래서 AB형과 O형
부모 밑에서는 무조건 A형이나 B형이 나와야하죠. AB형이나 O형이 나올 순 없는 겁니다. 반면
Cis-AB형은 AB형 유전자가 한쪽에만 몰려있기 때문에 상식과 다르게 AB형 유전자를 모두 주거나 또는 아예 안 주는 경우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명이 AB형임에도 O형과 결혼해 자식을 낳으면 O형 혈액형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죠.
이 혈액형은
1929년 프랑스에서 AB형 어머니와 O형 아버지
사이에 O형 자녀가 태어난 사례를 기점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는데요. 애초에 cis라는 말이 프랑스어로 ‘한쪽에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1968년에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전세계 중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아주 특이한 혈액형입니다. 특히 전라남도 해안지역 쪽에 그 수가 많고, 중국과 일본에도 일부 분포는 하고 있습니다.
(클릭하면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됩니다)
CIS-AB 혈액형은 특이한 경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보통
부모의 혈액형이 모두 B형이라면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B형이나 O형인 것이 상식인데요. 그런데 이런 상식을 뒤집고 B형 부모 사이에서 AB형인 딸이 태어난 겁니다. 자녀의 혈액형이 바로 cis-AB형이었던 것인데요. 부모 중 cis AB형이 없지만,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해 자녀가 Cis-AB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주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ABO를 결정하는 유전자 중 단 1개의 돌연변이로 B형 유전자가 Cis-AB형 유전자로 변한 것이죠.
두번째 유형은 봄베이 O형 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봅시다. O형 아버지와 O형 어머니 사이에서 A형이 나올 수 있을까요? 보통의 중학교 과학교육 수준에 비추어 봤을
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O형 부모 밑에는 O형만 나와야 하니까요. 하지만 부모 중 한명이 봄베이 O형이라면 A형이나 B형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봄베이 혈액형은 전세계 인구의 0.0004%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특이한 유형의 혈액형인데요. H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ABO 항원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요.
간단히 말해서 표준적인 혈액형 검사에서는 O형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A,
B, 혹은 AB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유형을 이야기합니다.
이 특이한 혈액형은 영국 식민지 시절 봄베이로 칭해졌던, 지금은 다시 뭄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의 한 도시에서 1952년 처음 발견되었는데요. 참고로
인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나와 배우자가 모두 O형인데 자식이 O형이 아니라도, 이제는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죠?
세번째는
Weak 유형의 혈액형입니다.
Weak 혈액형은 A형이나 B형 항원이 매우 약하게 표현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A항원이나 B항원의 수가 너무 적어서 혈액형 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만약 Weak A/정상B 또는 정상
A/weak B 유전형을 가진 사람은 AB형이 아니라 B형이나 A형이라고 오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혈액형은 유전학적 특성을 반영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여러 특수한 경우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혈액형만으로 친자 여부를 확정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으며, 더
정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한 확인이 필요합니다.